본 문: 요한일서 1장 1절 – 10절(통독범위: 요한일서 1장 – 3장)
제 목: 믿음은 생명의 말씀과의 사귐입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예수님이라는 선포로 시작됩니다. 그 말씀 안에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빛이 있습니다.
요한일서가 기록될 AD 90년경의 교회 성도들 대부분은 예수님에 대해 말로만 전해들었을 뿐입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요한은 1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손으로 만진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복음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귐(fellowship)’ 때문입니다. 헬라 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신들은 꾸며진 이야기라 사귐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실존이기에 사귐이 가능합니다.
사도 요한은 신앙생활의 본질을 ‘사귐(fellowship)’이란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요한이 보고 들은 바를 이방의 교회들에게 전한 것은 그들과 사귐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3절). 그리고 성도 간의 사귐은 아버지의 그의 아들 예수와의 사귐이 됩니다(3절).
신앙생활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과의 사귐에 치명적인 한계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방해하는 첫 번째가 혼자만의 신앙생활이라면, 두 번째는 어둠에서 행하는 태도이다.
6절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 가운데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조금도 어두움이 없으신 빛이시기 때문입니다(5절).
하지만,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과의 사귐이 모두 끊어지지 않습니다. 9절 말씀처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깨뜨리는 것은 죄보다 죄를 변명하며 합리화시키는 태도입니다. 죄를 숨기고 부인하는 모습입니다.
빛 가운데서 행하는 삶은 예수님과의 사귐입니다. 그 사귐은 언제나 생명의 말씀을 통해 더욱 깊어집니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